[서호정의 현장에서] 홍명보의 자선경기에서 모두의 축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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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897회 작성일 18-10-22 17:43본문
새롭게 단장을 한 장충체육관은 탄생된 이후 처음으로 축구를 위해 자신의 공간을 내주었다. 2003년을 시작으로 올해 13회를 맞은 홍명보 자선경기,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5’는 그 동안 거쳤던 축구전용구장들과 잠실실내체육관을 떠나 장충체육관으로 왔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인 홍명보가 2002 한·일월드컵에서 받은 국민적 사랑에 대한 환원으로 시작된 자선경기가 새로운 막을 올린 것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자선경기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또 한번 껍질을 깨고 나왔다. 대회를 주최하는 홍명보재단의 이사장으로 늘 자선경기의 중심축이자 주연이었던 홍명보가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브라질월드컵의 실패로 인한 국민적 비난은 자선경기의 지속성에 대한 그의 의지를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행사인지를 스스로가 자각하고, 주변의 도움이 뒷받침되며 자선경기는 이어졌다. 대신 홍명보의 자선경기가 아닌 모두의 자선경기로 형태를 바꿨다. 그것을 위해 선수 혹은 감독으로 참석했던 홍명보 본인이 뒤로 한발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27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3번째 자선경기에 홍명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조연이었다. 행사 시작 전 입구에 서서 VIP와 취재진을 맞이하고, 기념행사를 위한 사진 촬영, 자선경기에 참가한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는 정도였다. 사랑팀과 희망팀을 이끈 것은 최진철과 안정환 두 감독이었다. 최진철 감독은 17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포항스틸러스의 새 사령탑으로 올랐고, 안정환 감독은 완생을 향한 청춘을 도전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 <청춘FC>에서 감독 데뷔를 하며 올해 화제를 모았다. 자격이 있는 두 지도자였다.
경기장 위에 선 것은 그야말로 2015년 한국 축구의 올스타들이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과 17세 이하 대표 선수들, 여자 축구 선수들, 청각장애 선수, 청춘FC의 선수들까지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이 총출동했다. 인기 방송인 서경석과 야구 선수 이대은까지 가세해 이 자선 경기가 축구라는 영역을 넘어선 모두의 축제임을 알려줬다.
실내체육관으로 옮긴 이후 풋살 방식으로 치러지는 자선경기는 특유의 높은 몰입도, 팬들과 함께 하는 세리머니 등의 매력이 여전했다. 경기 초반 선제골과 동점골을 주고 받은 양팀 선수들은 유니폼 안에 감춰 둔 티셔츠의 문구들을 모아 이번 대회의 주요 컨셉인 청춘을 향한 응원을 펼쳤다. 선제골을 넣은 사랑팀은 ‘잊지마 당신은 어머니의 자부심’을, 동점골을 넣은 희망팀은 ‘청춘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희망팀의 첫 골을 넣은 선수가 청춘FC 소속이었던 임근영이었기에 의미가 더 남달랐다.
부담을 턴 양팀 선수들은 그 뒤부터 멋진 골들을 넣으며 준비해 온 세리머니 꾸러미를 풀었다. 희망팀의 지소연이 골을 넣자 한국 축구의 신구 ‘특급스타’로 통하는 이승우와 이천수가 나서 뿅망치 대결을 펼쳤다. 처음 후배 이승우에게 뿅망치를 한대 맞은 이천수는 강한 승부욕을 발휘하며 응수하는 그다운 모습을 보였다. 희망팀의 박주호가 추가골을 넣자 이번에는 특별 손님 이대은이 나섰다. 이대은은 희망팀의 홍일점 지소연을 향해 사랑의 화살을 쏘며 여성팬들을 애타게 했다. 사랑팀의 이종호가 추격골을 넣자 최근 <응답하라 1988>에서 화제가 된 복고 열풍의 주역 ‘반갑구만 반가워요’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이천수의 의욕적인 패스에 이은 염기훈의 골로 사랑팀이 또 한 골을 넣었다. 이천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출동했다. 모두가 언제 나올지 궁금했던 복면가왕 세리머니였다. 이천수는 붉은색 종이가방을 뒤집어 쓰고 음료수통을 든 채 나와 노래를 불렀다. 이대은은 축구에도 소질이 있었다. 지소연과 합작해서 골을 돕더니 뒤 이어서는 직접 골까지 넣었다. 이대은은 청각장애를 안고 있는 장애인 국가대표 김종훈과 홈런 세리머니를 펼치며 희망을 선사했다.
승패의 의미가 적은 자선경기는 쉴 새 없이 팬들과 호흡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13회째를 맞은 홍명보 자선경기는 이 부분에 있어 가장 큰 노하우를 갖고 있다. 하프타임 이벤트조차도 팬들과 함께 했다. 캐논슈팅 콘테스트에 나선 김진수, 정대세, 지동원, 황의조는 자신의 순서를 소화한 뒤에 그 자리에서 바로 사인한 공을 팬들에게 선물했다. 관중들은 하프타임에도 자리를 함부로 뜰 수가 없었다. 하프타임 공연을 위해 등장한 울라라세션도 최적의 초대 손님이었다. 흥겨운 공연을 펼치며 팬들과 함께 호흡했다. 김진수와 이승우는 공연 중 난입을 해 보는 이들을 더 즐겁게 했다.
캐논슈팅 콘테스트에서 지동원의 활약으로 승리한 희망팀은 3점을 더 얻어 9-4로 앞선 채 후반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랑팀의 반격은 무서웠다. 서현숙의 골을 시작으로 무더기 득점이 나왔다. 희망팀은 방송인 서경석이 골키퍼로 나서 몇 차례 인상적인 선방을 보여줬지만 이상민, 염기훈, 이종호, 김병지(2골)의 연속골을 앞세운 사랑팀에 역전을 허용했다. 사랑팀이 10-9로 앞선 시점부터는 팬들과 함께 하는 세리머니가 이어졌다. 희망팀의 이승우는 동점골을 터트리자 바르셀로나의 선배인 사무엘 에투가 과거 했던 것처럼 사진 기자로부터 카메라를 빌려 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희망팀 선배들을 직접 촬영했다. 사랑팀이 이에 질세라 팬의 카메라를 빌려서 배경이 된 팬들과 다 함께 하트 표시를 하며 단체샷을 찍었다.
이날 화제의 중심에 섰던 것은 단연 이승우였다. 경기 전 선수 소개 당시에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가장 큰 함성을 받은 이승우는 첫 참가에도 불구하고 금세 적응하며 자선경기의 주연이 됐다. 취재진, 팬들과 교감하는 세리머니를 펼치는가 하면 이날 방송을 위해 자리한 KBS의 정지원 아나운서와 함께 춤을 추는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승부를 가른 것도 이승우의 골이었다. 마지막에 얻은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이승우의 골로 희망팀은 13-12로 사랑팀에 승리했다.
사실 승리의 의미는 크지 않았다. 처음 참가했든, 여러 번 참가했든 모든 선수들은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사랑과 희망을 나누며 누군가의 꿈을 채워주겠다는 대회의 의의를 공유한 팬들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했다. 이천수는 예능감을 뽐내며 악당 역할을 했고, 김승규는 집요할 정도로 상대 슛을 막아내며 최선을 다했다. 안정환 감독은 청춘FC의 제자들이 자신을 끌어내 이천수와 함께 2002년의 오노 세리머니를 재현하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김병지는 14년 전 히딩크 감독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튀어나오기 본능을 재현하며 결국 2골을 넣었다. 비싸게는 3만원이라는 적잖은 돈을 지불하고 온 팬들이 자선이라는 의의를 뛰어넘어 만족을 하게끔 해줬다.
홍명보는 코트 위에 없었지만 자선경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대로였다. 4천명이 넘는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참가하는 선수들의 마음도 조금씩 변해 있었다. 홍명보라는 선배, 혹은 감독과의 인연이 참가의 시작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축구인으로서 연말에 팬들과 함께 한다는 의의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소중한 휴가 중 하루를 포기하고 이 행사에 온전히 시간을 보태는 이유다.
추캥(축구로 만드는 행복)이라는 행사를 통해 선배가 심은 씨앗을 더 큰 열매로 싹 틔운 염기훈은 “이제 이 행사에 참가하지 못하면 섭섭할 정도다. 많은 선후배들이 이 행사에서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다. 대가 없이 순수하게 참가한다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소속팀에서 입은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뿅망치, 화살 등 소품을 갖고 와 세리머니 아이디어를 내며 자기 몫을 한 구자철은 “모두가 자발적인 마음을 갖고 임하고 있다. 그라운드를 벗어난 공간에서 승부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며 정말 즐겁게 임했다”라며 의의를 설명했다.
2회째 참가한 장현수는 “대회를 참가할수록 나중에 나도 이런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참석해 팬들을 만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 때마다 주변에 한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안고 돌아간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김승규는 “처음엔 홍명보 감독님에 대한 감사로 참가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팬들을 만나고 우리가 속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이다”라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청춘FC를 대표해 참석한 염호덕의 말은 인상 깊었다. “처음엔 과연 이런 행사에 참가할 만큼 내가 한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봤다. 하지만 나의 비중은 어떻든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 보람을 느낀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많은 용기를 얻어간다.” 관중들은 즐거움을 통해, 참가자들은 그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을 통해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홍명보 자선경기는 홍명보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축제로 자라나고 있었다. 12월 27일 오후에 발견한 모습이었다.
서호정 / 2015.12.2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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